본문 바로가기

여행

2006년 이천-정동진 여행기

반응형

이천에서 정동진으로

 

 

2006년 8월 2일(水)
전날 한 학기를 함께 했던 스튜디오 사람들 절반과 청계천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일어나 보니 오전11시였다.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자 이제 출발을 해야지.
일단은 중학교 절친한 친구이자 이번 여행의 동반자가 될 주민이네 집으로 향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서 롯데리아 햄버거 따위를 먹어주고. 이천행 버스표를 끊었다. 4200원 우등이구나. 버스는 12시 20분차 도착하면 덥겠군. 날씨가 너무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났다. 뭐 버스 안은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버스는 출발. 버스에 달린 티비가 전과 달리 화질이 안 좋고 끊어짐이 없었다. DMB인가? 도착할 때쯤 차창 밖으로 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드디어 도착. 이천 터미널서 주민이네 집은 8번 버스를 타야한다. 표지판에 8번이 없어서 길을 건너서 기다리다가 주민이에게 전화를 한 후에야 다시 길을 건너 제대로 타고 오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의 계획은 내일 시작인 여행의 준비. 먼저 자전거 뒤에 짐받이를 달러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타는 동안 땀이 계속 눈에 들어가려해서 고생을 좀 했다. 처음 간 자전거점에선 짐받이와 자전거 프레임의 연결부가 넓어서 핀을 바꿔야 한다며 아저씬 못 하겠다 하셨다. 어쩔 수 없지. 두 번째 자전거점에선 아저씨의 힘으로 짐받이의 연결부를 조여 주셨다. 첫 번째 자전거점 이야기를 하자 아저씨는 젊은 사람이지? 라 하시며 땀을 흘리시면서 짐받이를 마저 달아주셨다. 가격은 16000원씩 2개 32000원. 비싸도 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주문해놓은 안장이 아직 도착을 안했기에 내일이 출발인 우리는 이거라도 달고 달려야 했다.
짐받이도 달았겠다 이제 E-마트로 향했다. 만원짜리 땀 빠지는 스포츠티셔츠와 모기향, 등등 잘잘한 것을 5개가량 골랐을 때, 주민이가 버너를 친구에게 빌려야겠다며 쇼핑을 잠시 멈추자 하였다. 이번일의 주최자는 주민이니까 말에 따랐다. 주민이 친구집은 멀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전거의 도움으로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버너를 받고서 다시 E-마트. 컵라면(육개장 작은 컵 6개. 결국 먹지 않았다. 왜 산건지......), 가스, 양갱10개(간식이다.), 장갑, 건전지, 필름 등을 사서 집으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을 차례. 저녁은 순대국밥이다. 양이 꽤 많았다. 배가 부르게 먹을 수 있어 괜찮았다. 집에 도착한 후 짐을 다 정리 해놓을까 했으나, 얼음물을 핑계로 내일 하기로 했다.
내일이구나. 내일은 6시 기상이 계획이다. 계획은 깨지기 마련이지만,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주민이집에 오면 항상 코스로 보던 영화 혹은 만화 등도 뒤로한 채 잠을 청했다.

 

 

2006년 8월 3일(木)
첫날이다. 일어나보니 6시반?. 늦은건가? 주민이네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간단한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서 얼른 짐을 챙겼다. 나는 버너, 가스 따위의 식기구들과 돗자리, 주민이 삼각대, 내 얼음물, 내 옷가지. 이정도? 주민이는 인터넷서 7500원에 산 1~2인용텐트, 주민이 옷가지, 지도책자, 컵라면, 얼음물. 이정도. 이제 출발인가...
설레기보단 졸려서 좀 힘들었다. 그래도 출발. 계획은 이러했다. 오늘은 안흥까지. 힘들다면 원주까지. 유명 메이커의 이름을 시트지로 잘라 붙이겠다던 주민이의 계획은 나의 미진함에 의한 의욕상실로 ‘H’ 2개와 'M' 하나 만 남았다. H는 하주민이의 자전거 플레임으로 M은 나(이명기)의 자전거의 플레임으로 붙여졌다. 출발하기전 자전거를 사진기에 담았다. 주민이 자전거 뒷바퀴에 매달린 태극기가 이제 펄럭일 차례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듯 했다. 빠졌다면 가는 길에 사면된다. 걱정은 붙들어 매고 드디어 출발. 날씨는 좋았다. 하늘이 돕는 건가.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이천서 출발. 부발을 거쳐서 42번 국도를 타고 쭉 달려 나가서 동해까지. 중간에 태백산맥을 넘어야한다는 난제가 있었지만 동해로 가기 전에만 있다면야 근성으로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민이의 생각. 일단 원주까지 간 다음 상황을 봐서 찐빵마을 안흥까지 가던지 하는 게 오늘의 일정.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길에서 넘어졌다. 주민이는 속도를 내어 너무 앞으로 갔기에 내가 넘어지는 걸 못 보았다. 혼자 아파해야하는가. 손이 좀 까졌다. 뭐 아프진 않다. 무엇보다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넘어졌다는 정신적 데미지가 날 슬프게 했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핸들을 잡고 출발. 부발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잠시 멈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첫 분기점. 12시부턴 해가 너무 강해서 3~4시까진 쉬기로 계획을 잡았기에 머뭇거릴 시간은 많지 않다. 다시 출발이다. 길은 다닐만했다. 오르막이 있었지만 곧 내리막이 나왔고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어디까지나 다음에 나올 오르막에 비하면). 처음 달리는 국도라 조금은 드라이브되어서 빨리 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강원도다. 여주를 지나고 터널 2개를 지나 문막 쯤에서 다리 밑에 정말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발좀 담구고 쉬다가. 여기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을까 했지만 귀찮았다. 그래 귀찮았다. 그래서 앉아서 쉬다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는 휴게소를 기대했다. 하지만 좀더 현명했어야 했다. 고속도로에 있던 휴게소는 국도엔 없던 것이었다. 신호등 앞에 멈춰선 트럭의 아저씨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듣기 전까진 점심을 문막 휴게소에서 해결할 계획이었다. 재밌는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막 휴게소를 국도에선 갈수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 후, 조금 아래에 있던 동화골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쉬기로 했다. 허름해 보이는 휴게소. 그래도 이런 곳에서 우리에게 점심과 쉼터를 제공한다면 고마운 휴게소이다. 자전거를 그늘에 주차시키고, 넝쿨 그늘이 진 평상위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잘 잤는데 초파리가 간지럽게 해서 깨버렸다. 일어난 김에 시간이 되어 밥을 먹을까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은 빵빵하구나. 우동에 김밥 정도 먹으려 했는데, 5000원짜리 한식 뷔페밖엔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밥은 먹어야지. 메뉴는 다양했다. 고기도 먹고, 계란말이도 먹고, 부침개도 먹고, 밥도 먹고, 후식은 식혜. 전체적으로 맛은 에러였다. 배는 고파서 잘도 넘어갔다. 식사를 하고 좀더 쉬(자)다가, 3~4시쯤이 되었고 출발을 했다.
원주에 도착. 살짝 피곤했다. 잠은 여기서 자기로 하자. 원주는 조금은 큰 도시였다. 좀 돌아다녔다. 목표는 찜질방. 원주까지 와서 무슨 찜질방이냐 하겠지만 텐트보단 낫다. 찜질방의 위치를 대략 파악한 우리는 원주 시청을 찾았다. 다음날 출발을 위해. 좀 헤맸지만 찾았다. 이제 쉴 수 있다. 찜질방으로 가보았다. 대성학원과 같이 있는 찜질방이라 좀 웃겼다. 재수생들 공부하고 사우나하고 가는 건가. 자전거를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다. 누군가 가져갈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안장을 뽑아서 들고 올라갔다. 찜질방은 8시 이후로는 7000원인가 했고 그 이전은 5000원이었다. 6시 이전이여서 좋았다. 사우나에서 오늘 흘린 땀들을 닦아 내고 찜질방안으로 들어가서 티비프로를 보며 연예인들 노는 걸 봐주다가 식당에서 냉면을 먹었다. 밥을 먹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냉면은 나름 시원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쉬며 티비보다가 만화책도 좀 봐주고 웃찾사를 보는 걸로 하루를 마감했다. 여행 첫날은 웃찾사로 끝내다니... 나쁘진 않았다.

 

 

 

2006년 8월 4일(金)
기상 5시 30분정도. 슬슬 여행기도 문장이 짧아지기 시작했구나. 내 여행문은 항상 시작은 거창한데 뒤로 갈수록 빨리 끝내고 싶단 생각에 문장이 짧아진다. 되도록 길게 써야지.
아무튼. 일찍 일어나서 사우나를 들려준 다음, 바로 출발이다. 세워놓은 자전거가 누군가 가져가서 없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주차장으로 왔다. 자전거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듯 멀쩡했다. 오늘도 시작이구나. 찜질방 온길 그대로 되돌아가다가 페밀리 마트에 들려서 삼각김밥을 아침삼아 먹고 음료수도 한 병씩 샀다. 500ml 작은 페트 병. 꼭다리만 바꿔주면 자전거 타고 가다가 먹고 싶을 때 쉽게 먹을 수 있다. 꼭다리를 바꾸고 출발.
길 찾아가는 것은 의외로 쉽다. 도로 이정표에서 42번만 따라 가면 된다. 반대방향이라면 곤란하지만 다음목적지의 지명과 42번만 있으면 OK. 처음 온 도시를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은 지금은 잘 설명이 안 된다. 나쁘진 않았다.

찐빵마을 안흥. 전날의 이상적인 목표. 우린 여행을 너무 쉽게 보고 있었다. 안흥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너무 길었다. 날씨만 화창한 완전 더운 여름날.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끌고(타고 가는 것은 무리다.), 오르고 또 올랐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음료수와 물 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불쾌지수도 조금씩 높아졌다. 나오는 나무그늘 마다 쉬었던 것 같다. 중간쯤에 나온 다른 길로 빠지는 산길에서는 양갱도 먹으면서 좀 오래 쉬었다. 다시 출발. 끝이 안날 것 같던 오르막도 끝이란 것이 있었다. ‘오르막차로 끝’ 사진을 찍었다. 이제 폭주만 남았다. 끌고 올라가는 길은 시간이 오래 걸려 지루하지만 타고 내려오는 길은 타본 사람만 아는 재미가 있다. 주민이는 내리막에서 잘 달린다. 나는 넘어진 기억이 있어서 브레이크를 살짝살짝 잡아가며 달렸다.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길 줄이야. 끌고 올라온 길이 길긴 길었나 보다.
길었던 내리막은 항상 금방 끝나버렸다. 길은 평평해졌고, 찐빵가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안흥에 도착했다. 휴. 어제 원주에서 여길 올 생각을 했다니 사전준비가 덜된 것 같았지만 어쨌든 도착했지 않은가. 안흥찐빵을 먹어봐야 했지만 더워서 먹기가 싫었다. 대부분의 가게가 찐빵을 팔고 있었다. 박스 포장된 찐빵들이 많이 보였다. 시내처럼 보이는 골목에 들어섰다.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어 어색했지만 건물들은 낮았고 작은 동네에 왔다는 걸 알려주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막국수가 먹고 싶었지만, 나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니까. 우리는 찐빵마을 안흥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식당이름은 개미 식당. 주방너머로 기계로 뽑는 면이 보였다. 맛은 좋았다. 주인아주머니께 물을 떠도 되냐고 물었고 허락을 받은 나는 정수기에서 1.8L물통을 채웠다. 웃긴 상황이었다. 맛있게 먹은 우리는 밖으로 나와 개미식당 맞은 편의 문구점에서 5000원짜리 밀짚모자를 2개 샀다. 'BOOLIM'이라 적힌 띠가 둘러져있었다. ‘몸부림’으로 정의 내렸다. 후에 생각해 보니 ‘불임’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섬뜩했다. 그래도 자전거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어 좋았다. 평지를 다닐 땐 머리에 잘 붙어 있지만, 내리막에서 폭주할 때면 어김없이 뒤로 넘어가서 내목을 졸랐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았다. 밀짚모자 쓰고 가는 자전거 여행. 2006년 여름 방학을 의미 있게 해준 주민이한태 고마웠다.
음. 점심이 끝나면 어김없이 쉬는 시간이다. 길가에 있는 나무그늘이 시원하게 드려진 잔디밭에서 잘까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넘겼다. 물가 주변은 어떨까 하고 내가 의견을 냈지만 물가엔 그늘이 없었다. 좀더 앞으로 가보았다. 학교가 나왔다. 평상에 돗자리를 깔로 누웠다. 나무그늘은 언제나 시원했다. 이곳이 ‘안흥초등학교’였던 것 같다.(여행 중 메모를 하지 않은 내가 원망스럽다.)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스피커가 켜져서 신경에 약간 거슬리는 전자음이 들렸다는 거. 방송부. 방학할 땐 스피커를 꺼놨어야지. 뭐 상관없다. 우리는 그늘이 있으면 되니까. 잠을 청했다. 그늘이라 시원하긴 하지만 몸엔 땀이 맺혔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 자고 일어나면 정신이 없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있기에 오후에 힘내서 달릴 수 있다.
힘내서 달릴 오후가 되었다. 출발 전에 학교를 좀 둘러보았다. 실내 운동장서 초딩들의 기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탁구부. 방학도 없는 건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탁구를 해서 행복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떠올랐고, ‘괜찮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알 수 없는 거다. 열심히 탁구하던 아이들 몰래 정수기로 물병에 물을 채우고, 출발이다.
계속 달렸다. 오르막이 나오면 끌고 내리막에선 폭주하고.
상안. 운교. 방림.
주민이가 내리막에서 넘어졌다. 잘 타고 내려가던 주민이가 갑자기 자전거위로 넘어가는 게 작게 보여서 주민이가 넘어졌구나했는데, 자전거 핸들은 돌아가 있고 얼굴, 팔, 다리 다 긁혔다. 불쌍한 주민이 조금만 속력을 줄이지. 저녁에 확인한건데 최고시속이 66km였다. 빠르다. 주민이는 그 사건이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후에 말했다. 점점 어둑어둑해져갔다.
상방림에선 내가 표지판을 잘못 보는 바람에 주민이랑 살짝 마찰이 생겼었다. 뒤로 돌아가 표지판을 확인한 후, 난 조용히 했다.
평창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 샌들이 떨어졌다. 내발은 이미 타있었다. 샌들의 라인을 따라 줄무늬가 나있었다. 떨어진 샌들로는 자전거를 탈수 없으니 새 샌들을 사야했다. 어두웠지만 신발가게에서 쿠션감이 있는 샌들을 구입했다. 2만원. 학교서 텐트를 치고 잘 계획이었다. 신발가게 아저씨는 고수부지를 추천했고, 샌들을 사고 가본 결과 괜찮았다. 학교엔 수도가 있으니 학교의 시설이 좋다면 거기로 가는 게 좋았다. 일단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저녁은 ‘나드리’라는 김밥천국 같은 분식점에서 돈가스세트와 스페셜떡볶이세트를 배가 터지게 먹었다. 팥빙수가 맛있게 보였지만, 내 위엔 팥빙수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아쉽지만 뒤로 하고 학교에 들려보았다. 좀 씻자는 것도 있지만 텐트를 치는 장소로 어떤지 보러 간 것이다. 이게 웬걸. 밤의 학교는 정말 무섭다.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텐트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고수부지서 치기로 했다. 귀신 나올 것 같은 학교의 수도에서 좀 씻고, 상태가 말이 아닌 옷들(땀에 절여졌다.)에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리곤 바로 나왔다.
고수부지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텐트 칠 자리는 다리 밑으로 정했다.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이 삼겹살 따위를 구워먹고 있었다. 퍼떡 7500원짜리 텐트를 치고서 모기향도 피우고 짐을 정리하고 자전거를 텐트에 묶었다. 음료수 따위를 사러 슈퍼에 갔다 오는 길에 화장실을 발견. 고수부지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텐트에 들어간 주민이는 오늘 넘어진 이야기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나도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젖은 빨래를 텐트위에 놓아서 물이 떨어져서 주민이한테 한소리 들었다. 그래서 나가서 다시 짜서 자전거에 널었다. 텐트 안 돗자리의 바닥은 울퉁불퉁했다. 튀어나온 부분을 베개로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2006년 8월 5일(土)
텐트 안에서 자는 것은 피로가 잘 풀리지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 긴 츄리닝 바지를 가져왔다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새벽엔 너무나 추웠다. 이불은 주민이가 가져온 것 하나였기에 나눠 덮어야 했다. 주민이는 내가 코를 골고 설쳐댔다 했다. 이번 여름방학 때 의미 있는 일 중 하나인 목 수술이 무력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피곤해서 그랬겠지. 그랬겠지. 그랬겠지.


기상은 일찍 했다. 나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늦게 일어났을 텐데, 이번 여행 파트너인 주민이는 잠귀가 밝은 타입이었다. 몸이 좀 쑤셨다. 고수부지 텐트인데 그래도 이정도면 뭐 괜찮았다.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챙기고, 짐을 챙겼다. 텐트를 접고 아직 덜 마른 빨래들은  낮에는 햇빛이 강렬하니 마르려니 하고 짐받이에 위에 얹어서 달릴 계획이다.
아침은 항상, 패밀리마트 삼각김밥. 모르겠다. 이 부분이 조금 섭섭했다. 운동량이 많은 만큼 든든하게 먹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어디를 가나 하나씩 있던 패밀리마트는 우리에게 삼각김밥을 먹게 했다. 식사가 끝나고 한 박자 쉬고 출발.
안흥 고개에서 이미 이번 여행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몸소 느낀 우리는 오늘도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밀고 있었다. 국도의 갓길엔 이상하게 나비가 많았다. 그것도 평소엔 보기도 힘든 큰 나비들이 있었다. 문제는 다들 죽어가거나 이미 죽어있었다는 점. 삼방산 고개를 올라가는 길에 사슴벌레를 발견했다. 크기는 100원 짜리 2개에 50원 짜리 하나? 다쳤는지 잘 못 걸어 다녔다. 좀더 끌고 올라가서 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지나면 대부분 내리막이었다. 끌고 올라갈 때보다 체감시간이 짧아서 좀 아쉽지만 불가능한 건 바라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내리막이 끝나고 미탄을 지났다.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길, 이번엔 길도 굽이굽이 굽어있었고 좀 경사가 급했다. 길이 S자로 휘면서 심하게 올라간 부분의 중간에서 잠시 쉬었다. 우리는 힘들다 투덜댔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 근성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오늘의 점심과 휴식을 위한 중간 목적지는 아리랑의 고장 정선. 주민이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동안 정선아리랑을 불러보라고 했다. 하지만 모른다는 거. 대부분은 그런 식이었다.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밀어서 올라가면 내리막이 나오고 그 다음은 도시나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오르막의 끝 내리막의 시작에선 너무 반가워서 올라가는 길이 끝나는 지점을 사진 찍곤 했다. 정선도 그러했다. 끌고 올라가며 땀에 쩔고 폭주할 땐 시원한 바람에 땀을 말렸다(!). 신나게 내려오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이라는 입구를 사진에 넣고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좀 들어가면 K마트라는 나름 큰 마트가 있었다. 정선까지의 길이 너무 힘들었기에 얼음물,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세트로 사서 목을 축이고 한숨을 돌렸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 가장 찌는 시간이다. 점심은 강원의 김밥천국 ‘나드리’에서 참치김밥과 계란말이김밥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이제 쉴 시간이 되었다. 골목을 누벼서 찾은 학교에서 휴식을 취했다. 엄청 큰 나무가 있었다. 그 아래 벤치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서 다 말랐을 것 같았지만 마르지 않은 빨래를 다시 자전거에 널고서 벤치에 앉아 쉬었다. 하늘이 맑았다. 학교에 수영장이 있었다. 음. 이번 여행 전엔 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밤 빨래와 세수를 위해 갔던 학교도 오늘 쉬고 있는 이 학교도 수영장이 있었다. 좋은 학교구나. 주민이와 중학교 때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애들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잠든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일어나서 짐을 챙겨 수돗가에서 세수를 했다. 또 달려야 한다.

 

출발하기 전에 어제 저녁 돈까스와 떡볶이를 먹을 때 옆에서 모르는 사람이 맛있게 먹고 있었던 팥빙수를 먹으면 어떻겠냐고 주민이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에 먹을까 했지만 다 먹고 나선 배가 터질꺼 같아서 넘어갔다. 참은 게 아니다. 먹을 수가 없었다. 여튼 점심을 먹었던 나드리로 다시 가서 팥빙수를 시켰다. 팥빙수는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했다.
오늘 계획은 없었다. 좀 미숙했다고나 할까. 무계획은 위험한거다. 정선에서 출발한 우리는 북평을 지나서 여량에 도착했다. 정선과 비교하긴 무리가 있을 만큼 작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마을이었다. 텐트를 치고 잘 학교도 있었고 음식점도 많았다. 우체국 계단에 앉아서 지도를 보던 우리는 오늘 계획은 갈 때까지 가는 것이라며 다시 지도를 접고 자전거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신나게 평지를 달리다 접한 오르막. 지도엔 봉정이란 곳도 있었고 송계란 곳도 있었다. 좀더 가다 보면 임계에 도달하기 전에 마을이 있을 거라며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타고 가고 있었다. 꽤 긴 오르막이 나타났다. 끌고 올라가기를 몇 시간째 벌레가 꼬인다. 모기향에 불을 붙여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자전거를 계속 밀었다. 물은 엄청 맑았다. 중간 중간 보이는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들도 보였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왔다.  어둑어둑해졌다. 하지만 길은 내려갈 생각을 안했다. 너무 어두워서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버거워왔다. 주민이는 중간쯤 나타난 언덕에서 텐트를 치고 자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좀더 편한데서 자고 싶었다. 그래서 좀더 가보자고 좀더 가면 내리막이 나오고 마을이 나올 거라며 억지를 부렸다. 컴컴해질 무렵 만난 내리막을 안전운전을 통해 천천히 내려간 다음 오르막을 다시 만난 후에야 나는 할말을 잃었다. 첫 내리막이 시작되기 한 10여분 전 트럭한대가 우리를 불렀다. 국도에서 중간 중간 만날 수 있는 과일이나 야채, 커피 따위를 파는 노점상(?)에서 온듯했다. 좀더 가면 내리막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우리가 운영하는 이런 노점상(?)이 또 있다며 거기서 자라고 했다. 아저씨는 친절했지만 돈이라도 달라하면 어떡할까 하는 생각에 아저씨의 호의도 ‘싸게 해줄게’로 들렸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랐다. 아저씨의 말대로 내리막 안전운행 후 또 만난 오르막에서 노점상(?)이 나타났다. 여기서 자게 되는 구나. 우린 저녁도 못 먹었는데. 오늘 저녁은 살짝 식은 안흥찜빵, 감자떡. 가격을 5000원, 다까이데스. 좀 속상했다. 자전거를 그렇게 힘들게 밀며 타며 왔는데 저녁이 이게 뭐야. 하지만 이런 애같은 소리 할 대상이 없다는 게 사실이었고, 나는 개념을 찾아야했다. 배는 고팠는지 찐빵과 감자떡은 잘 넘어갔다. 음료수도 시켜서 들이키며 주인아주머니의 ‘자전거 할머니’이야기를 듣고 있을 무렴 트럭 아저씨가 나타났다. 학생들 부담 갖지 말고 텐트치고 자라며 아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국도에 붙어있던 노점상아래의 민박집 뒤쪽으로 안내해주었다. 아저씨는 진짜 친절한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안사는, 사람살고 있을 법한 집의 화장실을 사용 할 수 있었다. 좀더 좋은 곳이었으면 했지만 처지가 처지가 아니었다. 아저씨가 집을 지을 때 썼다던 작은 방하나와 개울가 옆을 추천하였다. 주민이와 상의 끝에 아저씨의 방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결정했다. 아저씬 걸레로 닦고 자라하셨지만, 역시 귀찮았다. 밥해먹어도 된다며 친절히 여기서 밥해 먹으라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귀찮다는 거. 입구에 모기향을 피우고 아저씨방에 텐트를 쳤다. 일단 씻고, 드디어 잘 시간.
정말 위험한 저녁이었다. 여긴 몇 시간 전에 오늘 이곳까지 오면 정말 잘 달려온 거라 말했던 임계의 4km 전이었다.

 

 

2006년 8월 6일(日)
아침이다. 낯선 사람이라고 계속 짖던 큰 흰 개와 귀엽게 꼬리 흔들며 달라붙던 흰 강아지를 뒤로 한 채, 텐트를 접고 짐을 정리했다. 아침은 임계에서 먹기로 했다. 당연하지. 뭐 있어도 해먹진 않았겠지만 우린 쌀이 없으니까.
4km. 시작은 오르막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끝은 내리막이었다. 가볍게 아침 폭주를 해준 다음 임계에 도착했다. 임계는 여량이랑 비슷했던 것 같다. 아침안개가 깔린 임계에서 역시 아침은 패밀리마트. 든든하게 먹고 싶은 마음에 라면도 먹었다. 아침 메뉴는 김밥, 라면, 탄산.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국토대장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을 보았다. 자전거도 힘든데 걸어서 가려 하다니 대단했다. 식사를 끝내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오늘은 출발 전 계획에 따르면 돌아오는 날인데, 이미 우리계획은 수정되었었다. 아무튼 오늘은 동해까지 가는 날이다. 드디어 가게 되는구나. 임계에서 출발한 우리는 또 자전거를 끌다가 타다가 끌다가 타다가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시작된 오르막. 괜찮았다. 좀 있으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될 테니까.
자전거를 끌며 막연히 길게 내려가는 길을 상상하고 있었다. 신나게 내려간 다음 우리는 목적지인 동해에 골인하는 거다. 신나지 않는가. 동해시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폭주가 시작되었다. 내리막. 바람은 시원했다. 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가지 않아도 됐다. 이제 편히 내려가면 되는 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길이 너무 꼬여서 속도를 많이 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밀고 올라가는 오르막보단, 핸들잡고 브레이크 살짝살짝 잡아주는 내리막이 좋았다. 길은 애니메이션 이니셜D에 나올 만큼 굽어있었고, 경사도 꽤나 급했다. 문제는 거리.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엔 핸들을 잡고 있던 손과 팔마저 저려왔다. 대략 10km. 내려와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기분이다. 중간 중간 펼쳐지는 산의 멋진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고 보람도 느꼈다. 신나게 내려와서 평지를 좀 더 달려서 도착한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는 돌아갈 땐 버스를 타자는 생각을 굳혔다. 시간이 좀 문제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있었다. 태양이 뜨거웠다. 선크림을 신경 써서 바르지 않은 발등과 팔뚝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오늘은 괜찮았다. 구름이 끼어 태양이 덜 날카로웠다는 게 아니다. 동해시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평소 학교 나무 그늘 아래 벤치나 평상 같은데서 자고 있었을 시간에 마냥 달렸다. 동해항의 입구를 사진에 담았고 일단 눈앞에 보이는 이정표에 따라서 추암해수욕장을 향해 달렸다. 꽤 멀었던 것 같다. 동해시는 공장이 많았다. 음 공장이 많군. 이러면서 달렸다. 추암해수욕장에 도착. 사람들이 꽤 많았다. 파라솔과 야영장을 만원에 대여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북적북적거렸고, 물은 음 처음엔 괜찮아보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다지 깨끗하진 않았다.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부질없는 짓. 추암해수욕장의 랜드마크(!)로 추정되는 다리위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을 보았다. 뭐랄까 추암해수욕장은 거제도 덕포해수욕장과 많이 다르진 않았다. 그래도 망상해수욕장을 볼 때까진 괜찮아 보였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동해시로 끝이다. 어제 밤 임계 직전에서 입은 정신적 데미지도 있고 해서 오늘은 점심을 먹고서 찜질방서 쉬기로 했다. 점심은 좀 늦게 먹었다. 메뉴 선정에 있어서 주민이랑 마찰이 조금 있었다. 내 생각엔 자전거를 끌고 동해시까지 왔다면 힘들게 겨우겨우 왔다면 전문음식점에서 먹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민이는 E마트 푸드코트를 추천했다. 동해시까지 와서 E마트라니.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추억이 되겠다 싶었다. E마트.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 곳인가. 물건 값도 싸고 에어컨 빵빵하고 음식점도 구비되어있다. 체념을 하고 E마트에 들어섰다.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는 순살 돈까스로 주민이는 냉면으로. 따뜻한 밥과 함께 나온 돈까스는 괜찮았다. 주민이는 냉면이 별로라고 했고 먹어보니 진짜 별로였다. 밥을 먹었어야지 라며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다. 좀더 쉬다가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다. 빵과 카페라떼 따위를 사서 잠시 밖에 나왔는데 비가 쏟아졌다. 그것도 엄청 많이. 다행이도 지나가는 소나기였지만, 자전거가 비에 졌었다. 자전거도난 방지를 위해 뽑았던 안장 덕분에 자전거 플레임엔 물이 들어갔다. 주민이가 녹이 쓸 거라며 걱정했고, 나도 그 말을 듣고 걱정이 됐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덕분에 주민이는 여행기간 내내 날이 맑아 쓰지 않았던 2000원 짜리 1회용 판쵸우비를 사용했다. 자전거를 E마트 입구에 주차시키고서 다시 푸드코트 식탁에서 비가 내리기기 전에 샀던 빵과 카페라떼를 먹었다. 지도를 보며 오늘까지 온 길에 감탄하면서 빵을 먹었다. 다 먹고서 찜질방으로 향했다. 찜질방은 가까웠다. 동해시청에 근접한 E마트 근처에 있는 찜질방이니. 현수막을 보고 찾아간 거였다. E마트의 현수막엔 동해시청근처라 되어있었고 찜질방 현수막엔 E마트 근처라고 되어있었다. 찜질방은 대순진리교완 관련이 없는, 허위사실 유포 시에는 법적대응을 하겠다던 ‘화정원’이었다. 저녁을 먹기전에 들어갔다. 오후 4~5시였던 거 같다. 사우나에 들어가기 전 각반을 착용한 내다리와 고무장갑낀 내 팔에 놀랬다. 타도 그렇게 타다니. 사우나에서 땀에 찌질이가 되었었던 내 빨강 츄리닝 바지와 여행 둘쨋날에 주민이와 함께 넘어졌던 주민이의 노란 티셔츠를 빨러 화장실에 갔더니 친절한 찜질방 아저씨가 탕안에 비누도 있으니 거기서 하라 하셨다. 좋다고 들어가서 빨래를 빨고 샤워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화정원은 원주의 대성스파(?)보단 작았지만 모든 시설을 사용하고 있었다. 휴식을 취했다. 티비에선 플라이투더스카이의 브라이언이 환희에게 몰래카메라를 성공했고, 홍록기의 1200만원짜리 밍크코트가 나일론으로 판정이 났다. 실없이 비실비실 거렸다. 이게 휴식이지. 티비를 보다가 밥을 먹었다. 메뉴는 김치찌개에 비빔밥. 김치찌개에 딸려 나온 밥을 비빕밥에 같이 비벼서 2인분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요새 재미있다고들 하던 속 터지는 스토리의 칠공주를 보고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패션7080의 흥춘이 오춘이는 언제 봐도 웃기다. 몸이 피곤해서 인지 재미없는 개그에도 쉽게 웃음이 나왔다. 잘 곳이 좀 문제였다. 찜질방의 회복실 수면실은 찜질을 지대로 즐기신 아저씨들의 땀으로 꿉꿉해서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웠고, 사우나의 수면실은 에어컨이 너무 빵빵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사우나의 수면실에 자리2개가 났을 때 바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주민이는 코고는 아저씨도 그렇고 빵빵한 에어컨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그리고 주민이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아줌마급의 포스를 가지신 아저씨가 와서 주민이의 자리를 강탈해버렸다. 주민이가 다른 자리를 알아보려 간줄 알았던 나는 아저씨가 그 자리를 강탈하는 장면을 그냥 바라봤다. 화장실에 다녀온 주민이는 당황했지만,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자리였으니 사우나의 어떤 공간에서 잔다 하였다. 너무너무너무 피곤해서 나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2006년 8월 7일(月)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주민이가 깨웠다. 어제 아저씨에게 자리를 뺐긴(실은 내가 자릴 못 지킨 거나 다름없지만..) 주민이는 사우나에 마련된 어떤 공간에 누웠다고 한다. 처음엔 어떤 아저씨와 주민이 둘이서 널널한 공간을 쓰고 있었다 했다. 하지만 새벽2시쯤 눈을 떴을 땐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서 발 뻗고 눕기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잠도 못 잤을 텐데. 괜히 미안해 졌다.
씻고서 출발. 드디어 본 목적지인 정동진으로 가는 거다. 동해시에서 출발한 우리는 동해안을 따라서 난 7번 국도를 타고 출발했다. 이제 심한 오르막은 없겠지 했었지만, 역시 길게 난 언덕에서 자전거를 밀어야만했었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주민이는 오르막에서 힘들어했다. 나는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어느 정도의 경사는 탈수 있게 되었다. 히히. 조금 가다가 그늘에서 쉬고, 내리막을 기대하며 코너를 돌고, 오르막에서 자전거 밀면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계획은 이러 했다. 일단 동해시서 출발하고 나서, 망상해수욕장에 들렸다가, 정동진을 찍고, 강릉으로 가는 그런 짧으면서도 긴 마지막 날의 일정이었다.
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올라가서 신나게 폭주를 즐기고 나서 평지에 접어들었다. 길가에 있던 슈퍼에서 얼음물을 샀다.

 

 

길가에 나무들이 커서 보기가 좋았다. 신나게 인도의 보도블록을 달리는데 엄청 큰 잠자리(어딘가 다쳤는지 날지를 못하고 있었다.)가 나타났다. 드레곤 플라이. 직설적이었다. 진귀한 구경이니 잠자리 옆에 100원을 놓아두고 사진기에 담아주고 다시 출발.

망상해수욕장에 다 왔다.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독특한 모습을 한 동해고래화석박물관이 나타났다. 해수욕장 앞에 박물관이라. 건물은 독특했다. 입구는 고래의 갈비뼈(?)처럼 생겼었다. 들어갈까? 하고 고민했지만, 역시 귀찮아서 넘어갔다. 사진기에 담으려 했는데 버스가 가려서 말썽이었다. 대충 찍고서 가려고 하니 버스가 지나간다. 인생은 그런 거 같다.

  

 

 


망상해수욕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정말 괜찮은 곳이군. 상가와 가로등이 1소실점 구도로 펼쳐져있었고,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경계(?)를 지나면 모래사장이 멋지게 펼쳐졌다. 추암해수욕장과는 비교해선 안 될 그런 멋진 풍경이었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적었다. 멀리 번지 점프대가 보였다. 몰랐는데 후에 주민이가 번지점프를 할 계획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망상해수욕장에선 그게 번지 점프대인지 몰랐다는 주민이 왈.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경험해보는 거였잖아. 뭐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해수욕장은 이 정돈 돼야지 라고 말하고 있는 망상해수욕장에서 수영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귀찮다는 거. 발 정도는 담갔다. 시원하구나. 풍경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한숨을 돌렸다. 자 다시 출발해야지.
이제 본 목적지인 정동진에 갈 차례 이다. 조금 어이없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과 여행을 간 시점은 시간적 차이가 꽤 커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디테일하게 쓸 수가 없다. 특히 특정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중간 과정은 더더욱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행기를 일찍 쓰던가, 그때의 느낌을 수첩에 적든가 해야겠다.


아무튼 우리는 옛 국도를 타고 정동진을 향했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산을 넘는 느낌이 드는 그런 국도였다. 대신 길을 다니는 차는 별로 없었다. 괜찮지 않을까 해서 옛 국도로 출발했는데, 오르막이 너무 길었다. 끌고 가다 쉬다 물먹다 가다 쉬다를 반복 끝에 배골인가 하는 꼭대기의 주유소에 도착했다. 할머니가 지키고 있던 가게. 아이스크림 하나 정돈 먹어줘야지.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쉬고 경치를 보다가 다시 출발. 내리막은 흘린 땀을 식혀주며 금방 지나갔다.
모래시계. 정동진이다. 드디어 도착하게 되는구나. 즐비하게 들어선 관광 상품점, 숙박시설, 편의시설이 우릴 반겼다. 사람들의 호응은 별로 없어 보이는 여객선표를 파는 티켓박스도 보였다. 정동진역 앞에 도착했다. 아담한 크기.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런 크기였다. 여행 내내 쓰지 않았던 주민이의 삼각대를 펼쳐서 사진을 찍었다. 원하는 구도가 나오질 않아 좀 섭섭했지만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성취감이 있어서 괜찮았다. 정동진역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입장료는 한 사람당 500원. 기차를 타려는 사람도 간간히 있었지만 대부분은 안의 경치, 모래시계에 쓰였다던 그 배경을 보기위해 들어오는 듯했다. 동해 바다는 무척이나 맑았다. 남해바다? 심하게 말하자면, 여기에 비하면 발도 담구기 싫을 정도였다. 철창(아마 군사적인 이유로 설치되었을 철창) 너머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고, 푸른 바다위엔 보트도 돌아 다녔다. 넓게 펼쳐진 수평선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 할 기회를 줬다. 철도 위에서 사진을 찍고 경치를 즐기는데 갑자기 주민이는 허무하다고 했다. 음. 난 괜찮은데.

    

   

 

정동역을 나와 사진을 몇 방 더 찍고 나무 벤치에 앉아서 일정에 대해 논의 했다. 기차를 타고 강릉까지 가면 편하지 않을까 하고 주민이가 말했고,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티켓을 끊으려고 안에 들어갔을 땐 자전거를 기차에 실을 수 없다는 이유에 다시 나와야만 했다. 그럼 타고 가는 수밖에.
일단은 점심 시간이여서 밥을 먹어야지 않겠냐고 내가 권유했다. 주민이는 조금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먹을 것만 챙기려 들다니. 그래도 여행의 낙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난 아직 어린가 보다. 메뉴는 치킨으로 하기로 합의를 봤다. 일반 호프집처럼 생긴 곳에 들어갔다. 울려 퍼지는 메탈. 락 아저씨네 치킨 집이였다. 음향시설은, 아저씨가 직접 손보신듯했다. 벽엔 본드로 땜질된 부서진 기타와 여러 LP표지와 브로마이드가 데코레이션으로 걸려있었다. 아저씨는 턴테이블로 메탈 LP를 닭 먹는 내내 큰 소리로 틀어주셨다. 시킨 것은 프라이드였다. 아저씨는 치킨무가 떨어졌다며 쉰 김치를 주셨다. 괜찮은 조합이었고 맛있게 먹었다. 청바지의 아저씨는 중간 중간 망원경으로 밖을 보셔서 좀 웃겼다.
식사를 마치고 쉴 시간. PC방에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나름 게임을 켰다. 자버리고 말았다. 한 2시간 정도 졸다가 나왔다. 시간은 2시 반인가 3시쯤이었다. 구름이 끼어서 햇빛이 그리 날카롭지 않아, 출발하기로 했다.
강릉도착.(!?) 홍대기계과 뮤즈 기타 14기 윤수훈은 이런 좋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군. 버스터미널이 어디 있는지 길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천가는 버스표를 어디서 구하는 지 궁금해 했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퇴근하는 직원에게서 정보를 얻었다. 차표를 구입하고, 자전거 앞바퀴를 빼서 집어넣고, 짐을 정리하고, 버스에 올라타서 잠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중간 중간에 관광지나 이름 있는 곳을 찾아다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한된 기간에 제한된 체력이라 불가능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중간과정이 너무 지루했다. 날마다 이벤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해봐야 지나가버린 부질없는 이야기.
처음으로 간 여행이니. 그래도 이정도면 만족한다. 난 생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격게 해준 중학교 동창 ‘하주민’씨에게 감사를 표하며 여행기를 이만 마치고자한다.
2006년 9월 3일 일요일
여행간지 1달이 다되어서 여행기를 마무리 지은 이명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