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14(土)
오늘은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날이다. 내일이 바로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좀 멀리가보고자 한다. 8월 2일이면 37사단에 훈련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뭔가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가기로 했다.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행은 혼자가게 생겼다. 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겠지.
오전엔 방학이라 그런지 늦잠을 잤고, 일어나자마자 대충 식사를 하고 앉아 있다가 용산으로 향했다. 169장밖에 찍을 수 없는 256짜리 메모리카드로는 이번여행을 다 담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1기가짜리로 하나 장만하고, 용산역 아래에 위치한 이마트에서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보았다. 썬 크림, 간식거리, 모기향 등. 리복에서 17000원짜리 티셔츠도 한 벌 샀다. 드디어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무거워서 고생 좀 했지만, 버스로 다시 집에 왔고, 짐을 정리했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리고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목표는 목동 OMK. 타이어와 튜브 교체가 이유였다. 지하철을 타고서 환승도 해서 목동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 반가운 얼굴로 맞이 해주신다. 타이어와 튜브 앞뒤로 다 가라주세요. 아직 쓸 만하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냥 부탁드렸다. 부산에 갈 테니까. 앞서 오신 손님 짐바구니 달아주고, 내꺼도 후딱후딱 교체에 들어갔다. 비타500을 하나 건네셨다. 고맙다하고 바로 마셔버렸다. 드디어 교체완료. 바람도 빵빵하게 넣어주셨다. 이제 준비 완료인가. 비용은 덤탱이 좀 씌워서 58000원. 그 상황에서 나는 관대했다. 지불하고 나와서 다시 지하철로 해서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자전거 샾에서 펌프, 펑크패치, 짐 묶을 줄을 사고서 다시 집으로 가서 정리했다.
오후 늦게 누나 전화를 받았고, 마침 시간이 비어서(실은 있었지만, 캔슬하고서,) 만나러 나갔다. 누나는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강남으로 오라했다. 교보문고에서 누나 필요한 물건들(샤프따위)을 사고, 밖으로 나왔다. 강남은 그다지 좋아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으로 메워진 거리를 걷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누나가 괜찮은 일식집이 있다며 거기로 가보았다. 맛있어보였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가격도 강남다웠다. 녹두에 1000원짜리 회전초밥집이 갑자기 떠올랐고, 누나는 회전초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해서, 좋다고 갔다. 누나와 이것저것 주워 먹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어야 할 것을 그냥 먹다가 종업원이 도와준 다해서 2번 정도 난감했었다. 그냥 집에 갔어도 되지만, 누나는 서울대는 처음이라고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다. 다리 아픈데... 나와서 5516을 탔다. 환승입니다. 빨리도 먹었군. 학교로 빨려 들어가는 5516을 타고서 39동 앞에서 내렸다. 먼저는 공대 폭포를 보여줬다. 밤이라 그런지 조명이 켜져서 괜찮게 보였다. 낮에도 나쁜 편은 아닌 곳이다. 이런, 커플이 키스를 하고 있었다. 난감하군. 황급히 내려와서 39동을 4층 5층을 보고, ‘걷고 싶은’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학교투어를 마치고 버스에 탔는데 또 환승되었다. 어쨌든 누나는 신촌 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에게 약간의 용돈과 미국서 가져온 먹을거리를 주었다. 잘갔다 오라 한다. 힘껏 손을 흔들어서 누나를 보내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10시. 자고 내일 출발하는 게 맞지만, 자전거에 짐을 싣고 노량진의 상헌이네로 향했다. 루트는 뭐 눈감고는 못가도 길은 잃지 않을 정도로 많이 간 길이라 걱정은 없었다. 짐은 옷이 들은 컨버스 주머니 하나, 작은 빨간 메는 가방, 옆으로 메는 작은 검은 가방 이렇게 3개가 전부 이다. 주머니와 옆으로 검은 가방은 아래에 줄로 묶으려 했으나, 생각대로 잘되지 않아 어깨에 멜 수 있는 가방은 모조리 메고 출발하였다. 줄을 몇 개 더 사면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끌렸다. 그냥 가야지 뭐. 야밤에 자전거로 노량진까지 갔다. 피자도 한판사고 음료도 사고 상헌이도 불러서 같이 들어갔다. 일찍 자야하는데 하면서도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일정을 조정하면 되니까. 계획은 일단 오늘부터 3일간 대전까지 가고, 그 후 2일간 대구에 도착하고, 그 후 2일간 최종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수원, 좀 더 간다면 오산까지 가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매번 신세지는 상헌이네 집인데, 오늘도 아침을 얻어먹고서 출발했다. 상헌이가 한강까지 같이 가준다 했다. 고맙군. 첫날은 동반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자전거에 짐을 싸서 상헌이 자전거가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상헌이는 자기 자전거가 별로라며 여행가긴 무리인거 같다했다. 바퀴에 바람을 넣고 있는데, 훈련병 신재관의 전화가 왔다. 훈련이 ‘면제 받지 못한 자’에 나온 만큼 빡세진 않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곤 자기 보직이 ‘땡보’라며 잘 풀릴 것 같다 했다. 상헌이는 좋은 보직도 두고 봐야 안다며 주의를 줬지만 재관이는 듣지 않는 듯했다. 웃으며 전화를 끊은 우리는 이제 출발하였다.
노량진으로 해서 한강대교 쪽으로 달려간 후에, 한강 변으로 빨려 들어갔다. 재미있는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63빌딩을 찍고, 표기과제였던 LG트윈스빌딩도 찍고 천천히 올라갔다. 중간에 폭포도 만났다. 한강에 이런 곳도 있었군. 여름이라 그런지 이름 모를 꽃들(공부 좀 해야 할 텐데)이 여기저기 많이 피어있었다.
20대 학생 둘이서 키득키득 거리며 달리다보니 드디어 안양천으로 갈라지는 구간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한승은이 넘어졌었지. 갑자기 뒷바퀴에서 쉭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음!? 멈춰서 바퀴를 보았다. 쉭쉭 소리가 몇 번 더 나더니 펑 소리와 함께 뒷바퀴가 가라앉았다. 출발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펑크란 말인가. 이래가지고 부산 가겠어? 어제 교체한 튜브와 타이어다 펑크가 나도 대전정도에서 날줄 알았는데, 여기서 나버리다니. 한강 변에는 자전거 샾이 있는지 몰랐고, 목동 쪽으로 올라가고자 계속 길을 갔다. 조금만 가면 나왔던 목동으로의 진입로는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시간을 흘렀고, 우리는 목동 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서 길 따라 들어가니 교회가 나왔고,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하나 정돈 있겠지.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었다. 저어기 보이는 표지판 오른쪽으로 가면 상가가 있는데 그 상가 뒤쪽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알려준 데로 따라가서 튜브와 타이어를 해체시켰다. 튜브는 찢어져있었고, 타이어도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아. 펑크가 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제 58000원을 벌게 된 OMK직원은 삘 받은 채로 자전거 뒷바퀴 튜브에 무리하게 많은 공기를 집어넣었고, 그 상태 그대로 그렇게 뜨거운 한강 변을 달리다 보니 튜브가 터질 수밖에 없지. 아버지뻘 정도 되시는 샾의 주인은 친절하게 타이어와 튜브를 가라주셨다. 20000원만 주라 하신다. 난 어제 뭘 한 거지? 뒷바퀴 타이어가 앞바퀴랑 다르게 되었다. 접을 때 조금 뻑뻑한 감이 있었지만, 튼튼해 보이는 타이어는 만족스러웠다. 또 팽창해서 터지면 낭패니까 바람을 조금씩 빼두었다.
그렇게 거사(?)를 치르고 나오는 길에 맥도날드가 보였다. 배가 슬슬 고파왔지만, 아직 버틸 만 했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그런지 맥도날드 런치메뉴는 불티나게 팔리는 듯했다. 내말은 줄이 길었단 말이다. 기다리긴 싫었고, 나는 상헌이를 설득시켜서 안양까지 가서 먹자 하였다. 줄이 줄어들 것 같진 않았기에 상헌이는 그래 가자했고 다시 한강변을 향해 갔다. 나는 사실 상헌이를 낚은 것이다. 하하.
금방 나올 것 같았던 안양은 나오지 않았다. 지도를 한번 살펴보았다. 한참은 남았군. 중간에 자전거도 바꿔 타가면서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안양천이 옆에 흐르고 있어서 새들도 있고 해서 볼거리가 없진 않았지만, 꽤나 지루했었다. 혼자가려면 많이 힘들겠군.
안양으로 들어가는 루트는 기억에 정확히 없었다. 주차장이 나오고 한 번 더 간 다음 올라갔던 거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독특한 다리들을 몇 개 지나치면서, 아파트 단지도 지나가고, 슬슬 안양천이 지겨워 질 때쯤 위로 올라왔다. 지도에서 대충 위치를 확인한 후에 시내로 갔다. 맥도날드는 내가 사지. 가로등인가 전봇대에 자전거를 묶고서 롯데백화점이었나? 옆에 붙어있던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셋트 두 개를 시키고서, 미친 듯이 먹었다. 심지어 콜라 리필 3번.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 먹고서 콜라가 남아서 맥너겟도 시켜먹었다. 잘 먹었다. 좀 더 앉아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으로 나왔다.
수원까지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갈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 힘들게 같이 와준 상헌이는 고가도가 있는 4거리까지 같이 가주었다. 기념사진을 한두 장 찍고서 작별을 하였다. 집에는 어떻게 돌아갈지 상헌이도 걱정되었다. 잘 되겠지 뭐.
자 이제 혼자 가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역시 꽤나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힘껏 페달을 구르며 1번 국도를 타고 수원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행복한 도시 수원입니다. 날씨는 적당히 구름이 끼어서 햇볕이 뜨겁지도 않고 시원해서 자전거 타기에 적합했다. 수원엔 들어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관광안내표지판을 보았다. 화성이 수원에 있었다. 당연하지? 일단은 수원 시내로 들어갔다. 오래된 소나무가 많았던 노송지대는 꽤나 신선하고 쾌적했다. 노송마을이 꽤나 많았다. 북촌의 한옥마을과 비슷한 것인가 하고 들어가 보았는데, 민박집밖에 없었다. 목표가 여기는 아니니 계속 달렸다.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았다. 적당히 배회를 마치고서 공원에 도착한 나는 수원에 사는 동기 한솔이에게 전화해 보았다. 마침 할 일이 없다 했다. 나는 지도를 꺼내 여기가 일왕저수지 만석공원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한솔이에게 거기로 오라했다. 공원은 공사 중이었지만, 사람도 많고 시설도 괜찮았다. 달리다 보니 자전거 동호회처럼 보이는 무리에서 한 여성분이 내자전거를 보며 파이팅이라 외쳐주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분에게 고맙다고 할 만큼 적극적인 사람이 못되었다. 광장 같은 곳이 나왔다. 자전거 대여점도 있었고, 축구 경기장도 있었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았다. 한솔이는 곧 전화해왔고, 다 왔다 했다. 수원서 보니 또 반갑군. 홈플러스 쪽의 번화가에 먹을거리가 조금 있다며 한솔이는 거기로 가자했다. 가는 길에 방학동안 뭐하고 지냈냐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금? 2주일 배웠다며 한솔이는 아직 잘 못한다고 계속 잡아 뺐다. 겸손하긴.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계속 고민하며 배회하다 결국은 정하지 못했다. 수원에 왔으니 화성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거기부터 가자했다. 한솔이는 그쪽에 괜찮은 데가 있다며 거기로 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인재리움’이 좀 재밌었다.
화성은 꽤나 운치 있었다. 성의 안쪽에 생겨난 민가들도 흥미로웠다. 한솔이는 수원시에서 화성주변의 민가들을 사들여서 관광지를 만들고자 해서 주민들이 불만이 많다했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중간 중간 계단 때문에 애물단지 자전거는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정자(이름이;)에 올라서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성벽을 따라서 장안문 쪽으로 갔다. 가는 도중 조명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장안문은 컸고, 웅장했다. 중간에 모텔을 향해 놓인 대포에서 좀 피식했었다. 위에서 장안문과 성벽, 수원 시내를 감상하다가 장안문의 가파른 계단(꽤나 무서웠다.)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왔다.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과 단절될 수도 있는 문이었지만, 모두에게 개방되어있었고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솔이는 준희와의 건축구조과제를 이야기했다. 물론 수원 화성을 한 바퀴 다 돌면 좋았겠지만, 난 꽤나 피곤했고, 날도 어둑어둑해져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한솔이가 추천한 곳은 두리야 치킨. 닭 좋지. 장안문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닭은 안 먹고, 족구이라는 것을 먹었다. 정말 좋았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는 곳마다 불러낼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솔이에게 주위에 찜질방이 있냐고 물었다. 한솔이는 집주변에 괜찮은 데가 있다하였다. 또 고생했다며 찜질방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거기로 향했다. 3H찜질방. 3H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시설은 괜찮았다. 찜질방엔 사람이 적당히 없었다. 축구가 한창이었다. 한국이 졌다. 한솔이는 그럴 줄 알았다했다. 나는 많이 피곤했었는지 보다 졸고 말았다.
내일 목표는 천안.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니까. 수면실로 올라가서 잠을 청했다.
2007. 7. 16(月)
아침 일찍 일어났다. 6시인가 한솔이도 과외준비 때문에 일찍 일어나도 된다했기에 흔들어 깨웠다. 씻고 나와서 김밥천국으로 갔다. 김밥천국은 전국 각지에 위치해 있다. 식상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할 땐 분식집이 가장 편하다. 특히 혼자라면 더욱더. 한솔이는 순두부찌개, 나는 김밥에 오뎅. 오뎅국이 후추 맛이 너무 강해서 좀 별로였지만, 최대한 맛있게 먹었다. 한솔이와도 작별이군. 다음에 만나자며 손을 흔들어 작별을 하고 나는 오산을 향해 나아갔다.
수원역을 지나고 시골의 분위기가 짙어질 무렵, 또 다시 뒤 타이어 펑크가 터졌다. 울컥했다. 매일 뒷바퀴를 교체하면 튜브만 교체해도 8000원씩 들어가니까 제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돈보다 지금 상황이 문제였다. 펑크패치를 갖고 있었지만, 튜브를 휠과 타이어에서 분리시킬 툴이 없었다. 후회가 앞섰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다시 가보았다. 동네에 하나정돈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백화점 앞에 자전거 샾이 있었지만, 문을 열 시간이 아니었다. 돌아가 보았다. 초등학교 주변처럼 보였다. 툴을 사야겠단 생각으로 문방구에 들어가서 드라이버를 달라했다. 없단다. 좀 더 올라가면 철물점이 있을 거라 했다. 위로 올라가다 보니 철물점이 눈에 들어왔고, 운 좋게 자전거 샾도 있었다. 허름해 보였지만 좋았다. 샾의 주인인 할아버지께 펑크가 났다고 말씀드렸다. 자전거 기어가 커서 힘은 들지만 잘나가겠다했다. ‘보면 아시는 구나‘ 속으로 말하며 할아버지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튜브를 들어내시고 구멍을 찾아내셨다. 다행이 한 부분이었다. 사포로 갈고서 본드를 바르시고는 다른 일을 하셨다. 바로 붙여야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알아서 해주시리란 생각에 기다려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패치를 붙이셨다. 일전에 펑크패치가 안 붙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기다렸다 붙였어야 했던 거 같다. 튼튼하게 붙여주시고 다시 타이어와 휠 사이에 넣어서 바람도 넣어주셨다. 나름 이번 펑크는 바람을 너무 빼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적당한 바람을 유지해야 되겠구나 생각했다. 패치는 3000원. 적당한 가격이다. 믿음직스러워진 뒷바퀴를 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수원에서 오산으로 가는 국도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역주행을 했다. 중간에 공사하는 부분에서 갓길이 없어서 당황했었다. 도로중앙에는 중앙분리대가 버티고 있었다. 갑갑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자전거를 끌면서 걸어갔다. 다음부턴 역주행 안해야지. 고비를 넘기고 병점역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휴식 없이 계속 전진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화성시는 나에게 안녕히 가라하고, 오산시의 주황색탑이 나타났다. 오산이군.
오산시내에는 동탄에 밀려서 20년의 개발제한이 걸렸다며 항의하는 현수막들이 이곳저곳에 매달려있었다.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있나. 갑자기 비가 내려서 당황했지만, 우비를 꺼내 입고 다시 달렸다. 주민이랑 자전거 여행갈 때 산거 같았는데. 아닌가? 일체형으로 생긴 이 비닐 우비는 단추나 지퍼 따위는 없었다. 충분히 넓어서 가방을 메고서도 걸쳐 입을 수 있었다. 몇 안 되는 잘 산 물건 중하나라 생각했다. 막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개는 척하다가 보슬비가 내리고, 우비는 입었다 벗었다는 한 4번 정도했다. 절규하던 오산시를 벗어나서 평택으로 가는 길에 손바닥보다 더 넓은 무궁화처럼 생긴 꽃이 있었다. 대단하군.
평택에 도착했다. 허름한 민가와 밀림처럼 우거진 천도 있었다. 다리를 건너다본 강변에는 자전거 도로도 놓고 잘 꾸며 놓았었다. 시내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맥도날드가 있었다. 때는 점심시간(런치메뉴!)이었으니 거부 할 수 없었다. 혼자 여행 와서는 맥도날드라니 나라는 놈도 참 안쓰럽다.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서 평택역으로 가보았다. 1학년 2학기 도시 탐사 때에 용준이가 용산과 비교하면서 평택은 도시가 철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했었다. 시장에는 중심인지 모르지만, 길이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평택역은 공사 중이었다. 세수 좀하면서 구경 좀 할까 했는데 그냥 가기로 했다. 원래 장거리로 자전거를 타면 점심에 쉬어 주어야한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늦게 일어나서 그랬다 치더라도 오늘은 쉬어야했다.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역에서 구석으로 들어가다 보니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오래된 듯했다. 나무가 우거진 사람들 안 올 것 같은 벤치를 거점으로 잡고 시도한번 보고 가방 배고 누워서 30분정도 휴식을 취했다.
일어났다. 혼자 가는 여행이란. 목적지는 천안이니 더 달려야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빠져나와 역에서 뻗어 나온 큰길을 타고 쭉 달렸다. 중간에 나온 운동장 쪽으로 꺾어 들어가 보니 초등학교하나가 나왔다. 평택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에서 아이스크림과 달리다 다먹어버린 물을 버리고 새물을 샀다. 문방구 앞 평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다먹어버리고, 다시 출발했다.
천안은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얼마 걸리지 않았고, 좀 더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천안은 그냥 거쳐 갔다. 목표가 상향 조정되었기 때문에. 아파트 앞에 잘 조경된 강변은 꽤 괜찮았다. 천안대로를 따라 가는 길에 포장이 안 된 인도를 달리느라 덜덜거리기도 했다.
천안을 벗어나서 계속 달려 나갔다. 연기군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행복도시. 작년의 알바 경험 때문에 괜히 친한척하려고 한번 보고가고 자했다. 지도를 꺼내서 목표지를 조치원으로 굳히기로 했다. 대학가도 있으니 찜질방정도는 있겠지. 조치원은 복숭아가 유명한지 국도변에 복숭아를 파는 곳이 많았다. 동교리 쯤에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 눈길을 끌어서 사진도 찍고 가까이 가보기도 했다.
중간쯤 갔을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햇볕이 내리쬐지 않아서 좋았는데, 비는 달갑지 않았다. 꾸겨놓았던 우비를 다시 꺼내 입고 빗길을 달렸다. 안경에 비가 앉아서 앞이 잘 안보였고, 무엇보다 얼굴을 흐르는 빗물은 싫었다. 달리다 서서 안경 닦고 달리다 서서 얼굴 닦고 그렇게 겨우겨우 달려 나갔다. 한차례 비를 퍼붓더니 좀 잠잠해졌다.
중간에 호서대학교로 빠지는 길도 나오고 홍대도 나오고 고려대도 나왔다. 홍대는 서울에도 있는 구조물이 서있었고, 고려대는 대문을 그럴싸하게 만들어놓았었다. 호서대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멀어서 관두었다. 사실 홍대나 고대도 겉만 보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꽤나 어둑어둑해졌다. 비를 너무 맞아서 그런지 고무벨트에서 드득드득 소리가 났다. 출발하기 전에 비누칠 좀해야겠군. 비가 와서 그런지 오묘한 느낌이 나는 통로를 통해 철길을 건너서 조치원 시내로 갔다. 조촐한 조치원이었다. 꽤 커 보이는 시장도 있었고, 찜질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을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아들어갔다. 옥토찜질방. 아 고된 하루였다. 제대로된 저녁을 먹지 않았기에 컵라면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안된단다. 몇 명 없는 찜질방에서 계란에 콜라를 먹고 과자까지 먹었다. 과자는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었다. 이러니 살이 안 빠지지. 적당히 TV로 시간을 죽이다 피곤해서 올라가 누웠다. 새벽2시쯤에 애들이 쿵쾅거려서 깼다. 좀 잡시다. 라고 괜히 잘 놀고 있는 애들 기를 죽이고 다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어디까지 가는 거지?
2007. 7. 17(火)
이런... 5시 15분에 깨버렸다. 나는 7시인 줄 알았다. 많이 피곤한가보다. 후딱 씻고 나왔다. 점심까지의 목표지점은 대전! 대전은 고등학교 3년이 거기에 있었고, 양가 친척 분들이 다 거기 계시기 때문에 나와는 나름 친한 도시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은 삼각 김밥 하나에 콜라. 전에 주민이랑 정동진갈 때 많이 섭섭한 부분이었는데, 혼자고 하다 보니 그냥 가볍게 먹고 가는 게 좋았다.
대전은 대략 37km정도 떨어져있었다. 적절히 낀 구름들로 날씨는 착했다. 오늘도 시작이구나. 가는 길에 행복도시 건설 현장이 보일 줄 알았는데 지나쳤는지 안보였다. 비닐하우스 옆에 거대한 조형물이 있어 혼자 가는 여행을 그나마 즐겁게 해주었다. 거대한 팔뚝 2개였는데 손에는 꽃이 쥐어져 있었다. 2학년 1학기 건축과 컴퓨터 시간에 그렇게 많이 이야기 했던 곡면현상의 외피 재현. 나무를 엮어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마음뿐,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광역시라는 표지판을 지나서 it's deajeon이라는 표지판을 지나서 해맑게 웃고 있는 한꿈이와 93년부터 활약 중이신 꿈돌이 동상도 지나갔다. 벌써 대전인가. 유성 ic로 가는 길이 표지판에 보이고, 더 달리다 보니 고등학교 때 많이 보아왔던 140버스가 지나갔다. 대전이군. 일단은 월드컵경기장까지 내려갔다. 들어가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월드컵경기장 사진을 찍고, 월평동 쪽으로 가서 갑천대교를 건넜다. 이전에 이모집이 있던 동네이다. 주말마다 놀러가곤 했었는데. 동네에는 술집과 유흥가가 많아 아저씨들의 은행동정도 되는 곳이다.
자전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자전거 샾에 가려했는데 아직 열지 않았다. 시간은 9시 10분. 월마트였다가 이마트로 바뀐 대형 몰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분식집에서 돈까스를 사먹었다. 시간이 남는다는 느낌이 들어 저번학기 스튜디오 교수님이 설계하신 치과에 가볼까 했다. 위치를 모르니, 근처 PC방에 들어가서 위치도 확인하고, 남는 시간은 놀았다. 1시간을 채우고서 나와 이제는 문을 열은 자전거 샾으로 향했다. 끽끽거린다고 하자 고질적인 문제라며 그냥 가라한다. 렌치로 어디든 쪼아달라고 하니 쪼아주셨다.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이제 치과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 있었군. 가는 길에 괜히 갑천 변도 달려보고, 대전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엑스포 과학공원을 멀리서 찍었다.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로 대덕대교 주변까지 달리고, 위로 올라가 다리를 건넜다. 엑스포 과학공원은 한창 차이나 페스티벌 중이었다. 어정쩡한 대문이 급하게 준비된 행사임을 알게 했다. 중간에 돈 찾으러 은행에 갔는데 셔터가 내려간 국민은행 대덕특구지점은 ATM이 없단다. 아 오늘이 빨간 날이었지. 다시 나와서 길을 따라 쭉 올라갔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꽤나 현대식의 교회가 완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가 이제 점차로 변해가고 있다고 느꼈다. 좀 더 올라가니 만날 수 있었다. 코스모 치과. 사선이 많이 들어간 독특한 mass는 주변의 박스형 건물보단 단연 돋보였고, 난잡하지도 않고 보기에 좋았다. 1층엔 겔러리와 커피샾이 있고, 위층으로 치과가 있는 듯했다. 온 김에 들어가서 내부공간도 느껴봐야 했었지만, 나의 몸은 3시간의 운동으로 땀에 쩔어서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민폐는 끼치기 싫어서 괜히 길 건너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의경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듯했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그렇게 대전에서의 관광(?)일정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MBC를 지나 대전 예술의 전당 쪽으로 갔다. 큰 건물이 2개 정도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고, 중간에는 인공 연못이 있었다. 연못의 바닥을 파란 페인트로 칠해서 그런지, 수질은 모르겠지만 물색은 꽤나 산뜻한 느낌이었다. 주변은 조각들이 여기저기 분포된 넓은 공원으로 빨간 날답게 많은 가족들이 소풍을 와있었다. 한 바퀴를 돌아보고, 보이는 정부청사도 한 장 찍어주고서, 벤치에 앉았다. 12시나 되었다. 많이 돌아다녔군. 슬슬 자볼까.
햇볕이 강렬하지 않아서 1시간만자고 1시에 출발할까 했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1시 반이었다. 피곤했지만, 오늘 목표는 여기가 아니니 페달을 밟아야했다.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에서 볼 일도 보고, 세수도 하고, 팔은 이미 다타버렸지만 썬 크림도 발랐다. 대전 시내는 다른 도시에 비하면 익숙하다. 서대전역을 지나서 Say백화점을 지나서 계속 나아갔다. 다타버린 팔이 가끔 따끔거려서 약국서 화상약도 샀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충전을 해야 할 텐데, 잭을 꽂는 데가 고장이라서 편의점에서 충전이 안 되었다. 홍명상가에 가면 있을 꺼라 생각하며 가야지 하고 가고 있는데 시간도 예상보다 늦어서 모교인 대전고 즈음에서 방향을 돌렸다.
다음 목적지는 영동. 대전에서 보문산 입구 쪽으로 해서 표지판을 보며 4번국도 옥천을 향했다. 중간에 나온 자전거 도로는 반가웠는데, 갑자기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 공사 중이라 갓길도 없는 도로가 나와서 꽤나 힘들었다. 너무 덥고 땀도 나고 해서 까무러칠 뻔했지만, 꾹 참고 나아갔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 구름에 햇볕은 조금 약해졌다. 내리막은 언제나 즐거웠다.
옥천은 포도의 고장이라 한다. 옥천 시내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슈퍼에서 땡볕에서 다 마셔버린 물을 다시사고, 아이스크림도 사서 휴식을 취했다. 이상한 디자인의 영동역을 지나는데 독특한 자전거 도로가 하나 있었다. 비닐하우스처럼 철봉 따위로 터널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데, 포도 넝쿨이 감겨있었다. 시기가 적절했는데 먹음직스러운 포도가 매달려있었다. 아. 먹진 않았다. 옥천에서 포도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듯했는데, 꽤나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포도길이 끝난 이후로도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는 이어졌고, 차도와 경계역할을 하던 꽃밭의 꽃도 만발하였다.
꽃도 끝나고 자전거도로도 맥이 끊길 무렵, 표지판이 하나 나왔다. 영동 18km, 대구 132km. 내일은 100km이상가야 하겠구나.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동으로 가는 길은 괜히 너무 힘들었다.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랬던 거 같다. 오르막하나를 올라 적당한 거리를 내려가고, 다시 긴 오르막을 올라 쭉 내려갔다. 이상하게 내리막도 힘들었다. 영동군은 국악의 고장이라고 한다. 국악의 선율이 흐른다던 중부권 최대 규모의 옥계폭포를 가리키던 표지판이 보였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지나쳤다. 국악의 고장답게 영동군의 케릭터는 ‘우리’와 ‘소리’였다. 좀 더 가면 나오는 갈림길엔 난계란 곳이 있었다. 국악으로 특화된 곳이었다. 박물관과 악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관이 있다 한다. 과다한 수분섭취와 간식거리 섭취로 괜히 피곤해진 나에겐 그리 끌리지 않았다. 내려가 보지도 않고 바로 출발해서 영동으로 향했다.
드디어 도착. 빨간색과 파란색의 아치가 교차하는 영동교가 나름 나를 반겼다. 하지만 나는 힘들었다. 장거리도 아니었고, 오랜 시간을 탄 것도 아닌데 괜히 힘이 들었다. 일단은 배가 고팠다. 시내를 돌파해서 김밥천냥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영동에도 김밥천국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 안 끌려서 더 올라와 유사품으로 오해받을 만한 김밥천냥으로 갔다. 다양한 세트메뉴가 날 자극했지만, 나는 자전거 타는 내내 먹고 싶었던 냉면을 먹었다. 허겁지겁 먹고 나서, 찜질방의 위치를 물었다. 경찰서 나오는 부분에서 다리를 건너면 있다고 한다. 오는 길에 허름한 한증막 사우나가 있었는데, 설마 거기? 찜질방이겠지 하며 알려준 길대로 가보았다. 역시. 한증막 사우나였다. 단층에 가건물 삘도 나는 청석 불 한증막. 쉴 수만 있으면 괜찮았다. 아주머니는 잘 때 입을 옷에 이불까지 주셨다. 시설은 재밌었다. 씻을 때까지 몰랐는데, 아주머니가 잘 때 입으라고 주신 옷은 찜질방의 반바지에 티셔츠가 아닌 가운이었다. 오늘 여정이 너무 짜증났었던지, 지도에 체크하기가 귀찮았다. 영동으로 오는 길이 괜히 힘들었기에 나는 더 이상의 음식을 거부하는 배를 무시하며 라면을 시켰다. 컵라면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냄비에 끓인 라면이 나왔다. 심지어 공기 밥에 김치까지해서. 배는 이미 가득차서 올라오려 했지만, 억지로 우겨넣었다. 이러니까 살이 안 빠지지. 가운이 많이 어색했지만 잠을 청했고 이내 잠이 들었다.
2007. 7. 18(水)
눈을 떠보니 7시 45분. 너무 먹었나? 늦잠을 자버렸다. 씻고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아침은 오늘도 삼각김밥. 어제 너무 힘들었기에 오늘 아침에 2개나 먹었다. 무슨 이유지? 조촐한 싸이즈의 패밀리마트에서 먹었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 충전이 되는지 물어보니 된다 했다.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밖의 신호등도 없는 작은 사거리엔 학교 가는 어린애들과 수신호로 몇 안 되는 자동차의 흐름을 정리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길가는 사람 대부분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소박하고 좋았다. 슬슬 지루해질 무렵, 충전은 그만해달라고 말씀들이고 배터리를 받아서 다시 출발준비를 했다.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에 있을 거사(?)를 위해 배터리가 나갈때를 대비해 승규와 붕어(한승은)의 핸드폰 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자 오늘은 대구까지.
대구가 112km란다. 중간 기점(점심)은 김천으로 정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저녁까지 김천이었을 텐데, 계획은 슬슬 앞당겨지고 있었다.
햇볕이 강렬했다. 어제처럼 물을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땀도 많이 흘리고 다리에 무리도 오고해서 나무그늘에서 자전거를 눕혀 놓고 3분정도 쉬었다. 이내 다시 출발. ‘황간’이라는 단층의 작은 마을을 지나서 달리다보니 추풍령면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추풍령. 높지 않았으면 하면서 계속 달렸다. 의외로 많이 높진 않았다. 구불구불하게 올라가는 길이 상당히 귀찮은 법인데, 추풍령의 국도는 곧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여기가 김천이라고 알리는 표지판과 여러 조형물들이 지나갔다. 자전거도로도 시작되고 기분이 괜찮았다. 덕천 즈음에서 슈퍼에 들러서 물과 바로 마실 팩 쥬스를 샀다. 사거리에서 고장 난 차량이 있어 굉음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당사자를 생각하니 내가 짜증 낼 상황이 아니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 곧게 뻗은 길을 달려 나갔다. 김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영남제일문(嶺南第一門)이 있었다. 6차선의 도로와 양옆이 인도까지 덮는 지붕으로 이뤄진 문이었는데, 괜찮았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 사진 찍어 달라할 사람도 없어 궁상맞게 셀카로 찍고 계속 달렸다. 시내로 빠지는 사거리 한쪽 편에 분수가 물을 뿜고, 앞엔 휴식이라는 제목의 도금된 동상이 앉아있었다. 잘 꾸며 놓았군. 표지판에 시내라고 적힌 곳을 따라 달려 나갔다. 낮은 층고의 상가들이 이어지다가 조촐한 크기의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1층에 맥도날드.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했는데, 영양 면에선 별로겠지만, 간단히 해결하는데 이보다 괜찮은 건 없는 것 같다. 난 이미 다국적기업의 친구가 된 건가. 언제나 먹던 불고기 버거를 먹고 좀 더 나가보았다.
국민은행에서 돈 얼마를 찾는 사이에 은행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내자전거를 타보셨다. 잘 안 된다 시며 허허허 웃으셨다. 가까운 공원이 있냐고 여쭈어 봤더니, 옛 구청을 엎은 자리에 생긴 중앙공원이 있다 했다.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시장도 지나고, 김천역도 지나갔다. 이윽고 경찰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중앙공원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담한 대지엔 정자와 벤치가 배치되어 있고 중앙엔 분수도 있었다. 입구를 바라볼 때 왼쪽에 위치한 건물은 ‘김천문화의집’이었다. 아마 커뮤니티 시설인 듯했다. 적당한 정자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도 하고, 빨래도 했다. 마르라고 나무위에 널어놓고서 정자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점심 후라 그런지, 옆 정자에 아저씨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앉아서 누워서 한 시간정도 휴식을 취하고 1시 30분쯤 다시 출발을 했다. 대구가 좀 멀었기 때문이다.
김천에서 빠져나와서 왜관으로 향했다. 문제가 생겼다. 갓길이 없는 도로였다. 타다가 내려서 끌 수밖에 없었다. 2차선도로였기에 뒤쪽에서 오는 차(나와 같은 방향)가 지나갈 땐 앞에서 오는 차가 없길 바랄뿐이었다. 뒤쪽에서 오는 차는 내 옆을 지날 때 마다 ‘빵’거렸다. 트럭이나 버스는 내가 압도되어 겁부터 났지만, 티코 이런 차가 경적을 울리면 짜증이 치솟았다. 김천을 벗어나면서 사라진 인도와 갓길 덕분에 나는 힘들게 왜관을 향해 나아겠다. 여름답게 햇볕도 내리쬐어 땀도 많이 났다. 없는 갓길로 계속 끌고 가다가 길이 좀 넓어지면 타고 차가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리면 내리고를 반복했다. 길은 ‘미래를 여는’ 삼부토건이 공사 중인 듯했다. 물을 다 마셔서 중간 쯤 나오는 고기 집에서 물을 채웠다. 갓길이 없어, 차라리 공사가 진행되어가는 지대가 더 편했다. 아스팔트를 깔기 전 흙과 모래와 돌로 이뤄진 땅이었다. 갑자기 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몸이 공중으로 떴다. 넘어진 것이다. 자전거는 내 쪽으로 넘어지려 했다. 이런 경험을 갖게 해준 삼부토건에 감사하며 자전거를 반대쪽으로 밀었다. 오른쪽 다리와 팔을 좀 갈았다. 따끔따끔했지만, 그보다 더운데 넘어지기까지 해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대구에 가야하니까 정신을 가다듬고서 다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끌다가 타다가 하면서 앞으로 갔다. 무수한 컨테이너가 쌓인 역을 지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적검문소에서 검문 받는 트레일러트럭도 보았다. 왜관에서 쉬었다 갈까 했지만, 대구에 일찍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3거리에서 왜관 쪽으로 가지 않았다.
이내 낙동강을 건넜고 1시간 반 정도를 달리고,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끌며 타며 가고 있었다. 내리막이 시작될 무렵,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 온 건가. 도착지에 도착했다는 기쁨으로 신나게 페달을 굴렸다. 대구과학대학 생활관이 눈에 들어왔다. 보건대학 생활관도 있었다. 위치를 대충 확인하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방황을 좀 하다가, 거대한 농산물시장을 만났다. 시장을 오른쪽에 끼고 직진해서 다리를 건너려했는데, 차만 다니는 다리였다. 국도였다면 그냥 갔지만, 대구광역시까지 와서 차들과 함께 달리고 싶진 않았다.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옆에 팔달교란 다리가 있었다. 큰 다리였고, 인도도 있었다. 국가 하천 금호강. 다리가 이것 말고도 많이 있는 듯했다. 강폭도 꽤 컸고, 괜찮았던 거 같다. 신천대로란 도로가 있던데, 오토바이도 안 되고, 자전거도 안 되고, 마차도 안 되고, 달구지도 안 되고, 경운기, 트랙터도 안 된단다. 쭉 늘어선 5개의 금지 표지판이 재밌었다. 이제 시내구나.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마트가 반긴다. 없는 데가 없군. 큰 도시답게 차도 엄청났다. 다른 도시보다 더 많아 보였다. 대구 사는 동기 세철이를 불러볼까 했다. 5통화도 넘게 걸었는데 받지 않는다. 너무한 거 아닌가하고 생각해보니 해외여행 간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바보. 대구에는 친한 후배가 하나 살고 있다. 민주라고. 대구라고 하니 굳이 나오겠다고 한다. 고맙기도 하지. 연락을 하기 전까지 대구공황이 괜히 궁금해서 막가고 있었는데, 중앙로가 번화가라며 오라해서, 길을 많이 헤맸다. 까딱하면 미아가 될 뻔했다. 물어서 겨우 대구역까지 갔다. 대구역은 롯데백화점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역은 자연스럽게 중앙로와 이어지면서 대구의 중심을 장식하고 있었다. 지하상가도 있었다. 대전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산뜻한 느낌? 한일상가 지하에서 민주를 만나고, 번화가의 중심가로 들어갔다. 민주는 수영을 한다고 했다. 보람찬 방학. 땀에 쩔어서 같이 다니기 좀 그랬을 텐데 많이 미안했다. 자전거를 백화점 주차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자전거 주차장에 주차하고 밖으로 나왔다. 먹는 거 고르는 일은 진짜 일이다. 이번에도 뭘 먹지 하다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피자헛에서 뭔가 먹기로 했다. 아는 것도 없고 도움이 될 것도 없지만, 고민도 들어주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구나. 피자를 다 먹지도 못했다. 안하던 운동해서 그런가. 식사를 마치고, 자전거를 다시 끌고 나왔다. 대구 시내는 뭔가 밀집된 느낌이었다. 길도 좁고 사람도 많고. 민주말로는 대구의 중심이 점차로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시내였던 곳은 조용해지고, 새로 생긴 시내가 북적거린다고. 피자 먹는 내내 내가 피곤해 보인다던 민주는 동네에 있는 찜질방은 망했다며 시내에 있는 데까지 데려다 준다했다. 대구는 넓고 번화했으니 찜질방은 좀 더 들어가도 있을 것 같았다. 귀한 방학시간 내줬으니 내가 데려다줘야지 이러면서, 시내에 있는 찜질방하나를 지나치면서 걸어갔다. 그런데, 찜질방이 안 나타난다. 꽤 걷고 나서, 민주는 길가는 사람에게 가까운 찜질방이 있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어딘가를 가르쳐줬고, 민주는 거기 망했다던데 하며 의아해했다. 아주머니가 안 망했다 하니 한번 가봐야지. 우체국에 교회까지 붙어있는 이상한 찜질방이었다고, 문 닫는 뉘앙스를 풍기는 현수막이 걸렸었다고 한다. 문은 안 닫았었다.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하하. 민주 말대로 찜질방의 뒤편엔 교회가 있었고, 1층엔 우체국이 있었다. 집까진 알아서 걸어가겠다 해서 작별을 했다. 웰스포빌. 건물이 갖는 포메이션은 웃겼지만, 시설은 좋았다. 지도에 오늘까지 온 걸 체크하고, 나쁜 일을 겪은 붕어와 통화하고, 승규와 문자하고 잠에 들었다.
2007. 7. 19(木)
완전히 늦게 일어나버렸다. 8시가 뭐니. 후딱 씻고 나와서, 대구를 그냥 빠져나올까 했지만, 그래도 여행이니까 대구공항과 동대구역을 찍고 가기로 했다. 경대교를 건너서 길을 헤맸다. 역시 대구시내 길은 헷갈리고 복잡했다. 지도를 봐도 모르겠다. 간신히 위치를 파악하고 동대구역을 보게 되었다. 단층처럼 보였는데, 아래로 뭔가 더 있는 듯했다. 내부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공항 쪽으로 가기로 했다. 시장을 통과해서 가다가 분식집 근처에 자전거를 묶고 만두에 우동으로 아침을 때웠다. 납작한 야채 만두였는데 괜찮았다. 다먹어버린 물통을 채우고서, 다시 출발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은색의 금속 구조물이 입구인 다리(이름이;)가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꽤 잘 만든 거 같았다. 대구공황은 입면은 밋밋했고, 트러스로된 아치지붕이 삐져나와있었다. 앞에는 뭘 나타냈는지 모를 6개 기둥에 줄이 감긴 조형물도 하나 있었다. 내부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오늘도 나름의 목표가 있으니까.
본의 아니게 지하철을 따라서 계속 달려 나갔고 그렇게 대구를 빠져나왔다. 지금이 5일째 인데, 너무 부산만 보고 달려온 게 아닌가 싶어서 오늘은 경주에서 관광을 하기로 했다. 중간의 휴식 지점은 영천이었는데, 경주에 스트레이트로 갈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더 괜찮을 것 같아 꺾어 들어가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갔다. 경주를 20km정도 남기고 점심시간도 조금 지나고 배가 출출해져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분의 주요소 밀집지역의 현대슈퍼로 갔다.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화장실도 쓰고, 물도 사고, 가볍게 점심을 때웠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 꽤 큰 국도라 그런지 갓길도 넓고 달릴 만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북안터널. 작년 정동진 갈 때도 통과했던 기억이 있어, 겁먹지 않았었다. 심지어 들어가기 전에 쎌카까지 찍었다. 처음엔 타고 들어갔던 거 같다. 주황빛 도는 조명이 터널 내부를 밝게 했고, 꽤 괜찮았다. 하지만 트럭이 지나가는 순간 터널은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먼지도 많았고, 안 그리도 시끄러운데 경적까지 울려주셔서 짜증이 났다. 자전거에서 내렸고 천천히 끌고 갔다. 터널이 끝날 때 즈음엔 조명이 흰색으로 바뀌었다. 밖은 터널이 힘들어서 그런지 쾌적했다. 조금만 더 가면 경주.
경주에 도착할 때 쯤 되니 기와지붕의 주요소가 나타났다. 신선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우선은 무열왕릉을 보기로 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루트에 위치하고 있어서 들렸다 가면 괜찮을 듯했다. 입장료는 500원. 적절한 가격대였다. 신라 무열왕릉. 자전거를 주차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고분은 작은 산 같았다. 잔디가 잘 자라있어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무열왕릉과 고분을 감싸는 길을 한 바퀴 돌고서 내려왔다.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한옥 지붕들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주변과 잘 어울리는 듯했다.
무열왕릉은 이정도보고, 자전거를 다시 탔다. 무열왕릉의 팜플렛엔 김유신장군묘도 나와 있어 가볼까 하고 입구까지 갔는데, 오르막이고 해서 그냥 돌아 나왔다. 진입로의 나무숲은 울창해서 좋았다. 비록 갓길은 없었지만, 차도 얼마 안다녀서 자전거로 쾌적하게 통과했다.
이제 경주 시내로 들어갔다. 목표는 첨성대에 박물관 정도로 정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에 당황했지만 나에겐 우비가 있었다. 팜플렛의 지도를 보고 가고 있는데, 거리감이 잘 안 느껴져서 많이 헤맸다. 주변의 꽃밭이 아름다웠다. 드디어 첨성대 도착. 지도로 보면 꽤 가까웠던 거 같은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입장료는 역시 500원. 쏟아지던 비는 어느새 또 잠잠해졌다. 첨성대는 늘 보아왔던 대로 생겼었고, 울타리 친 잔디밭가운대에 있었다. 첨성대의 안전점검이라는 패널에는 이런저런 기술을 이용해서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했다고 쓰여 있었다. 넓은 곳에 첨성대 하나만 우뚝 솟아 있어서 볼거리가 그렇게 많진 않았던 거 같다. 아니면 내가 소양이 부족하던가.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꽃단지였군. 박물관으로 향했다. 입장료는 1000원. 밖에 자전거를 주차시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 티켓과 같이 생긴 티켓은 조금 흥미로웠다. 내부엔 코인락커도 있어 짐을 넣어둘 수 있었다. 경주국립박물관의 구성은 고고관, 미술관, 어린이 박물관, 선덕여왕신종을 모셔둔 곳 정도였고 두 개의 탑도 있었고, 잔디밭엔 여러 건축물 잔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목 잘린 불상들도 한 무더기 있었다. 일단 고고관으로 들어갔다. 경주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신석기 청동기의 생활 도구들이 있었다. 옛날엔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면서도 그다지 관심 없는 부분이라 그냥 지나갔다. 전시관은 중심을 축으로 4개정도의 관이 모서리마다 있었던 것 같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헷갈렸지만, 한번에 다 관람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들어간 곳은 미술관. 고고관도 그러했지만 나름 전통의 건축을 재해석한 느낌이었다. 1층엔 갖갖이 석상들이 놓여있었다. 1층의 관람홀을 다 돌면 2층으로 가게 되는데, 1.5층에 정보검색실과 휴게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2층의 관람홀을 다 돌면 1층으로 다시 내려오면서 관람이 끝났다. 건물을 한 바퀴 돌다 본 것인데, 지하엔 박물관의 사무실이 있었다. 다음으로 간곳은 안압지관. 인공연못이었다던 안압지에서 출토된 자료들을 모아 설명해주는 곳이었다. 1층에 계단과 슬로프를 교차시켜 꽤 재미있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벽면을 따라 관람을 하게 되어있었다. 1:50 안압지 모델을 마지막으로 2층으로 올라가면 관람 홀이 이어진다. 그렇게 또 벽면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관람이 끝나는 구조였다. 특별전시관엔 전시기간이 아니었다. 어린이 박물관은 관람 전에 통보를 해야 한다 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석탑 사진을 몇 장 찍고, 신종도 가까이서 보고 그렇게 관광을 마쳤다. 나오는 길에 경주빵은 안사고 찰보리빵을 2000원어치(5개) 샀다. 맛은 좋았다. 간식으로 몇 개 더 사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을 차례다. 시내로 따라 들어갔다. 터미널의 위치를 파악하고, 시장의 한 분식점에서 만두와 비빔냉면을 먹었다. 꽤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서 아주머니에게 가까운 찜질방을 물었는데, 이쪽엔 없다며 저쪽에 가보라셨다. 꽤 많이 들어갔는데, 목욕탕은 있어도 찜질방은 없어 보였다. 꽤 많은 거리를 여행했다고 나 스스로 만족했고, 오늘은 좀 비싸도 모텔에서 자기로 했다. 허름해 보이는 모텔로 들어갔다. 가격은 2만5천원으로 비쌌지만, 오랜만에 빨래도 하고 푹 자기위해 기꺼이 지불하기로 했다. 가격을 확인하고 내려가서 자전거에 묶여있던 짐을 풀어 올라왔다.
난 아마 이 순간을 잊지 못 할 것이다. 참 바보 같았다.
모텔 방에 올라와서 빨래도 하고 TV도 보고, 여유롭게 뒹굴 거렸다. 얼마 안남은 여행일정을 보며 뿌듯하면서도 서운했고 부산에서 느낄 희열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지도에 오늘 도착한 경주에 체크를 하고, 대자로 뻗어서 편하게 쉬었다.
2007. 7. 20(金)
완전 늦잠을 잤다. 앞으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모른 채로. 늦었기에 빨리 씻고 출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놓고 온 핸드폰 때문에 다시 올라갔다. 자 이제 출발해야..
자전거가 없다. 뒤에 얹어놓은 우비만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여행기는 이만 적을까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았다. 가방 안엔 들어있지 말아야할 자전거 자물쇠가 들어있었고, 주인아저씨 아줌마는 묶어도 가져가는 마당에 묶지도 않았냐고 되레 나무라셨다. 할 말이 없었다. 파출소로 걸어갔다. 순경아저씨는 친절하게 내자전거 사진을 프린터해서 핸드폰번호를 적고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렇게 파출소를 나와서 2시간정도 경주 시내를 방황했다. 역시 없었다.
시간은 11시가 넘어갔고, 배도 고파서 중국집에서 짜장밥을 먹었다. 배고파서 밥은 넘어가더라.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관광을 계속하기로 했다. 원래 자전거로 가야할 불국사와 석굴암에 1500원씩이나 하는 버스를 타고 꽤 긴 거리를 가서 구경을 했다. 사진도 많이 찍고 했지만, 감흥이 없었다. 4000원이나 하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불국사를 먼저 돌고, 버스타고 더 올라가서 석굴암도 보았다. 좋은데 비싸서 좀 그랬다. 외국인 관광객이 너무 시끄럽게 해서 좀 그랬다. 석굴암에서 내려올 땐 버스 안타고 걸어서 불국사까지 갔다. 일요일에 만날 친구들에게 슬픈 소식을 전했다. 붕어는 찾았으면 좋겠다면서 네이버 카페에도 올려주었다. 그럼 뭐해 모델넘버도 모르는걸.
이상하게 많이 피곤했다. 시내로 다시 내려와서 다시 파출소로 가보았다. 교대하고 가셨나보다. 나는 마음을 접고 기차로 울산에 가기로 했다. 자전거는 없지만 일요일 약속은 유효하니, 웃긴 일이지만 울산으로 향했다.
간략하게 적겠다. 울산에서도 괜히 좀 많이 걸었다. 고래박물관 표지판이 보였다. 내일 저기나 가야지. 시내에서 방황 좀 하다가 찜질방을 찾아 올라가서 휴식을 취했다. 자전거 여행 와서 자전거를 잃어버리다니. 이거도 추억이면 추억이니 간직하도록 해야겠다.
2007. 7. 21(土)
언제 일어났는지 기억도 안 난다. 씻고 짐을 어께에 메고서 PC방으로 향했다. 버스노선을 알아보려고, 네이버지식검색을 통해 246번이 터미널 앞에서 고래박물관이 있는 장생포까지 간다는 걸 알아냈다. 자전거 탈 때와 달리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좀 더 죽치고 있다가 11시쯤 밖으로 나왔다.
울산은 산업단지가 넓었다. 버스는 꽤 긴 거리를 가더니, 드디어 도착했다. 고래박물관인데 맞은편에 고래고기 전문점이 있어서 아이러니했다. 마음 탓인지 관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층에서 시작한 관람은 3층으로 갔다가 1층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점심쯤 되어서 고래고기를 먹을까 했지만, 역시 안 끌렸다.
울산 공업탑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서 246번을 안타고 256번을 타고 공업탑으로 갔다. 고등학생들이 막 많이 타고 그래서 괜히 쪽팔렸다. 로터리 중앙에 있는 탑이었다. 나름 랜드마크인가 보다. 그래도 좀 걸어나가서 울산대공원까지 갔다.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걸어 올라가다가 괜히 또 울컥해서 내려왔다.
붕어에게 문자를 보내 부산에 가겠다고 했다. 일찍 도착하면 또 pc방서 죽치지 뭐. 울산역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서 울산역으로 향했다.
부산가는 표를 달랬더니 어디냐고 물으신다. 대충 달랬더니 해운대로 주셨다. 해운대는 관광지가 많은 동네였다. 잘 그려진 관광지도는 돌아다니고픈 마음을 자극했지만, 자전거도 없는데 뭘.
붕어는 서면에서 보자고 했고, 우리는 엄청나게 번화한 부산에 놀라며 꽤 늦게까지 놀았다. 제주도를 돌고, 남해를 돌고, 배타고 거제도에서 온 승규와 부산이 고향인 붕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재밌게 놀았다(고기, 닭, 엔터테이먼트). 자전거는 빼고. 잠은 시내에 위치한 찜질방에서 잤다. 서울로 치면 명동인데 술집이 많은 번화가 같은데 한가운데에 위치한 찜질방이라 가격은 최고였다. 시설은 별로였고, 난민촌처럼 사람이 많았다.
2007. 7. 22(日)
사람이 빠지고 한산해 질 무렵, 밖으로 나왔다. 승규는 자전거가 있었다. 하지만 난 없었다. 빌려볼까 했지만, 대여하는 곳이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광안에서 내려서 걸어서 광안해수욕을 보고, 거대한 광안대교도 보았다. 걸어서 벡스코까지 간 것은 대박이었다. 자전거도 있는데 힘들게 함께 걸어주었다.
MeWorld라는 테마파크도 있었고, 롱샹성당을 애매하게 카피한 교회도 있었다. 벡스코에서 뭔가 볼까 했지만 가격이 비싸서 패스하고, 공짜로 볼 수 있는 벡스코 내부를 감상했다. 벡스코는 코엑스와 다르게, 지하몰(이라고 해봐야 음식점뿐)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지하철과의 연계가 원인인 듯했다. 지하에 위치한 허름한 양식점에서 돈까스에 스파게티를 시켜먹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가볼까 했지만, 걷는 건 자전거 타는 것보다 배로 더 힘든 일이라서 그만 두었다.
지하철로 부산터미널까지 쭉 올라가서 버스타고 돌아왔다.
자전거분실로 얼룩져버린 시작은 좋았는데 암울하게 끝나버린 군대 가기 전 전국일주 라이딩이었다. 2년후에 다시 사서 갈지 모르겠지만, 혹시 간다면 이번엔 확실하게 묶고 다니겠다. 하하하
군대가기 2일전(2007/7/31)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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